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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삶이 있다.

  








  벤자민 버튼, 그의 시간은 아름답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다. 당신은 언젠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어제가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이다'라는 말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어쩐지 오늘 하루를 방탕하게 보낸 것만 같은 내게 죄책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나의 시간은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어제 죽은 이에게 무한한 미안함을 갖게 하며 나를 책려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어제까지였다고 해서 누가 그의 인생이 초라하고 부족한 삶이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건 오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며 묵직한 무언가를 얻은 나도 아니고, 어제 죽은 이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나의 삶이 소중하고 아름답 듯, 당신의 시간도 아름답다. 그리고 오늘 만난 '벤자민 버튼'의 삶 역시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의 삶을 고작 166분 동안 밖에 훔쳐보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매력적인 원작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80세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다른 이들과는 흐름을 달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어떻게 그려지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시간, 어려졌으면, 좀 더 젊어졌으면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하지만, 80세의 외모를 하고 태어났을 때부터를 시작점으로 잡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인의 외모와 아기의 몸을 갖고 태어난 벤자민은 점점 젊어지고, 어려진다. 그런 그의 시간을 엿본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선택할 이유는 충분하다.

  한국에서 뿌려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포스터는 오직 '브레드 피트'의 얼굴을 강조하기 위한 마케팅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유명한 배우가 열연한 것도 영화 선택에 있어 중요하겠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위의 포스터가 더욱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손녀와 할아버지같지만, 진심으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장면이니까.

  겉 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그런 오류를 범해왔고, 또 당해왔다. 그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어쩐지 나의 예감은 틀린적이 없으니까, 정도의 오만함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다. 한사람이 가진 전부를, 관상 전문가도 아니면서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은 역시나 착각이었음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알게됐다. 

  영화는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길목에 놓인 병원에서, 임종을 앞두고 있는 듯한 노인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그녀는 두 가지 아이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그녀의 입을 통해서, 다른 하나는 그녀의 딸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의 상황과 어울려져 세 개의 이야기가 각각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어쩐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삶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결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벤자민의 얼굴은 사랑하는 아내의 생명과 맞바꾼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거부하고 싶은 80대 노인의 외모를 갖고 태어났다. 제법 부잣집 도련님으로 대접을 받고 살 수 있는 피를 타고 났지만, 겉모습만으로 그는 아버지에게 버림받는다. 그리고 그는 요양원 앞에 버려진다. 그를 거두어 준 것은 요양원의 '퀴니', 그녀는 불임이기에 아기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그녀는 벤자민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벤자민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관절염과 백내장을 앓고 있었으며 외관상 팔십 노인의 모습 그대로라서 모두가 금방 죽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요양원이었기에 그는 자신이 노인인 줄 알며 생활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노인들에 비해 경험이 부족했고, 아는 것도 없었으며, 단지 겉모습만 나이들어 보일 뿐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에는 묵은 세월의 흔적이 없었다. 그는 단지 심하게 겉늙은 어린아이였을 뿐이다. 그가 요양원에 있었기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 뛰어 놀 수는 없었지만, 벤자민이 무언가를 배우고 어린아이 다운 모습을 가지고 병정놀이를 하여도 이상하게 볼 사람은 없었다. 그 곳은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솜털같은 아이들 틈이 아닌, 인생의 묵직함을 알고 있는 노인들 곁이었기에 가능했을 설정이다. 또 그가 자라난 공간이 요양원이란 이유로 벤자민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큰 의문을 갖지 않게 된다. 외모에 걸맞는 행동을 강요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벤자민의 시간은 그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 되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요양원에서 퀴니를 만난 것이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불행의 순간이 오히려 행운이 된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모습은 아닐까.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도, 손녀와 할아버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달아난다. 하지만 언젠가 만나야 할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고, 그들은 중년이 되어 만나게 되고 그들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그들의 사랑을 누군가가 또 다시 그려낸다 하더라도, 이들 만큼 왜곡되지 않게, 무한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 낼 수 있을까. 

  벤자민은 유년과 청년, 노년기를 노년, 청년, 유년의 모습을 지낸다. 그랬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되고, 그의 선택은 자기 자신 보다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택이다.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그 것이 자신이 행복해 지는 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판타지적 요소가 영화 곳곳에 숨어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화에 몰입하는 데 있어 방해 요소가 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대체 언제 부터의 벤자민이 브레드 피트일까, 하는 궁금증이다. 영화 볼 때는 몰랐는데, 그 후 영화 스틸 사진을 보면서 언제 부턴지 알게 됐다. 아, 놀라워라. 인생은 아름답다. 그대의 인생도, 나의 인생도, 벤자민의 인생도.

by 블루데이 | 2009/02/08 01:52 | 여유로운 시선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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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roquis at 2009/02/08 02:44
멋진 리뷰, 별도장이라도 쾅 찍어주고 싶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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