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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들의 도시]괜찮은 영화를 외면케 하는 어설픈 제목








  내가 시사회를 통해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분명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돈 주고 보는 것에 있어 굉장히 오래 망설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반드시 보았을 거라는 확답도 할 수 없다. 그만큼 나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킬러들의 도시'라는, 마초 냄새가 폴폴 품기는 제목 탓에, 멋 부리는 킬러들의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니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고 할까. 아무튼 이 영화의 제목이나 포스터나 예고편이나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게 왠걸, 영화는 생각보다 유연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진지하고도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육십배쯤은 더 좋았다.

  [킬러들의 도시]의 영화 제목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영화 배급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의 원제를 찾아보니 [in bruges]로 벨기에의 도시이름이다. 이 도시에서 일어난 일인데, 마치 우리 나라의 도시 이름을 빌리자면 '경주에서' 혹은 '광주에서'정도가 되지 않을까. 파리도 뉴욕도 아닌 브리주란 지명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밖에 없을 것임을 가만하여 제목을 새로 지었다 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제목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좀 더 매력적인 제목이 붙었다면, 영화에 대한 첫인상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한국판 포스터 보다는 옆의 포스터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좀 더 순박한 킬러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여러 매체들을 통해 습득되어진 킬러의 이미지를 떠 올려 본다. 그들은 하나같이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돼지 고기를 먹을 줄은 알지만 살아있는 돼지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죽어버렸으면, 생각은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자의든 타의로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타인의 죽음을 잘 된 일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킬러들을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말한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보여준다. 

  동화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영상을 가득 채우며, 그에 걸맞는 음악이 흐른다. 살생을 저지르는 킬러들이 머물기에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에, 다음 지령을 기다리는 킬러 레이와 켄이 도착한다. 자극적인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벨기에의 도시, 브리주에서 레이는 지루함에 치를 떤다. 그에 반하여 느긋하고 여유러운 성품을 지닌 켄은 도시에서의 여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며 행복해 한다. 그리고 그 둘을 브리주로 보낸 보스 헤리, 이렇게 세 명의 킬러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은 각각의 고뇌를 안고 있다. 브리주로 오기 전 임무 수행시 실수를 저지른 레이, 그런 레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켄, 원칙을 중요시 생각하며 질서를 잡기 위해 브리주로 뒤 늦게 도착한 보스 헤리, 이들의 이야기를 감독은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게 이끌어 나간다. 

  제목에서 강조하는 '킬러'의 이미지와는 달리, 피가 난무하는 액션신도 없고, 싸움도 사실적일 뿐 화려한 발차기는 없다. 타인을 죽이기 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쓰는 킬러들의 모습이 더욱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외부의 적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들과의 갈등과 고뇌로 총을 사용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이미 많은 영화로 학습되어진 킬러들의 모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킬러'도 피와 눈물과 심장이 있는, 후회와 흔들림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서늘한 공감을 한다. 무례하고 못된 성품을 가졌다 생각한 이가 규칙과 원칙을 중요시 하는 모습은 묵직한 책임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죽고 죽이는 장면들 사이에서도 감독의 시니컬한 유머는 보는 이의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다.

  코믹함과 진지함의 경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야 말로 영화의 괜찮음과 그렇지 않음을 결정케하는 결정적 요인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 경계를 잘 지키고 있다. 무겁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주제를, 영화의 분위기가 쳐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코믹한 장면을 연출한 감독의 센스가 적절했다. 그러나 영화 제목만큼은 곰씹고 곰씹어도 용서할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아무튼 이 영화 꽤 괜찮다.

by 블루데이 | 2009/03/16 01:06 | 여유로운 시선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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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스테판's Movie .. at 2009/03/17 17:46

제목 : [리뷰] 킬러들의 도시 (In Bruges, 2008)
시사회를 보고 나오는 길에 팜플렛을 모으는지라 "킬러들의 도시" 팜플렛을 찾아서 뽑아들었습니다. 전 단언합니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소리소문없이 묻힌다면 그것은 영화를 보기도 전에 관객들로 하여금 전혀 엉뚱한 영화에 대한 기대와 상상을 하게 만들어버리는 한글 제목과 홍보문구의 조합 때문입니다. "킬러들의 도시",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죽여라. 그리고 즐겨라!!' '2009년 3월 품격있는 킬러들의 액션이 온다!' 영화는 살인청부 임무를 완수......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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