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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사랑의 흔적은 깊고도 짙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 그 몫이 어느 정도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사자 역시도. 하루에도 몇번씩 누군가와의 관계를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와 나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것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몫은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내가 감당해 내야 하는 바가 달라진다. 이는 상대방이 내게 주는 기대치와도 비례한다. 

  [더 리더]는 여인 한나와 소년 마이클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감당해 내야 하는 상황과 시선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만남은 화창한 날의 멋부린 성인들의 만남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으로 죽을 듯이 아프다는 말을 몸소 느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소년 마이클과 그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어른 한나의 만남은 누가 보아도 사랑의 시작은 아니었다. 단지 마이클은 열병이 나아갈 무렵, 자신을 도와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한나를 찾았고, 한나 역시 그런 마이클에게 대단히 친절하지도, 대단히 불친절하지도 않은 의무감의 사이로만 일관한다. 그러나 모두는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두 사람만이 감지 할 수 있는 그 떨림을, 숨길 이유도 감춰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소년 마이클은 다시 한나를 찾아간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성립한다. 처음부터 사랑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사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을 통해 사랑의 모습을 알아간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보다 길어지게 된다. 



  언제 부터일까, 한나는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는 요구를 한다.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사랑을 나누는 관계에서 책 속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한나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이야기에 감동도 하고 분노도 하며 기뻐하며, 마이클역시 한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기뻐한다. 마이클은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책을 빌려 오고, 수업시간에 읽은 책을 읽어준다. 한나만의 'Reader'가 된 것이다.
 
  그들의 사이는 그렇게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마이클은 준수한 소년으로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소녀도 있었고, 또래 친구들과 공유해야 하는 시간도 존재했다. 하지만 또래가 아닌 어른과의 만남은 마이클에게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하게 했고, 그렇게 그들에게도 위기는 찾아온다. 사랑의 위기는 한 사람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느끼지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그 누구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한나는 사회적으로 어른이었고, 마이클은 미성숙한 소년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책임을 누군가가 물을 수 있다면, 그건 마이클이 아닌 한나의 몫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따라 붙을 것이다.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어떻게 어린 아이를 상대로……, 등이 해당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누군가가 한 사람의 마음을 져버렸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사소한 것이었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시는 누군가를 믿을 수도 품을 수도 없는 상처를 마이클에게 남기고 한나는 떠난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의 생사조차 모르던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숨쉬게 된다. 마이클은 법학과 학생으로 한나는 피고인으로 법정에서 마주하게 된다. 사랑의 감정에도 나이를 초월한 솔직함을 보였던 한나는 법정에서도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언제나 솔직함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거짓 앞에서 하나의 정직함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이클은 자신이 그녀를 도와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그 길을 애써 외면한다. 그녀가 숨기고 싶은 치부를, 그것을 들춰내도 되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그 목소리를 녹음한 테입을 한나에게 보낸다.

  나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그들의 행동 앞에서 나는 소년 마이클 보다 어렸고, 나약한 존재였다.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울지도 못하고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그들의 사랑은 오래 전, 한나의 존재가 말 없이 마이클의 앞에서 사라져 버렸을 때 끝나버린 것이 아니었다. 마이클은 한나에게 다시 한번 'Reader'가 된다. 그리고 한나는 수동적인 청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글을 배워나간다. 서로에게 여전히 무언인가가 될 수 있음을 느꼈을 때의 감정을 무엇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어쩐지 나는 아무런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먹먹한 떨림만이 이들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뿐이다.

  당신은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 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더욱 이들의 사랑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름답다는 말도, 가슴 아프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타인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 것을 들어주는 행위', 이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이토록 깊이 각인시킬 수 있다는 사실과 대면하며, 나는 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당신은 이들의 사랑 앞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by 블루데이 | 2009/03/23 18:26 | 여유로운 시선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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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ang at 2009/03/24 12:50
나 책 사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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