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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지옥은 어디를 가리키는 지칭 명사인가요.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에 대한 얼마나 큰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까. 국가도, 자식도 믿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신이 언제나 나를 기억해 주고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일까, 두려움일까. 신의 눈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하며, 딱 그 정도의 역할에만 충실한 성직자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성직자의 모습은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하고, 인간의 원초적 욕구에 등을 돌리며, 인간의 욕구보다 신의 사랑에 더 큰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신의 은총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이다. 성직자도 인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직자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우리는 종종 신문 사회면에서 성직자의 범죄, 사기를 바라보면서 크게 놀란다. 그리고 가십란에 작게 실린 성직자의 선행에 있어서는 감흥을 받지 않는다. 봄에 꽃이 피고, 겨울에 눈이 오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신의 은총은 우주와도 같아서, 넓은 아량으로 인간들을 굽어 살피시어 사랑으로 화답하시는가. 나는 신앙이 없어서 지옥에 갈지, 천국에 갈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신의 사랑에도 기준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천국과 지옥으로 이분화 되는 사후세계가 이를 대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박쥐'를 보면서 기도하고 회개하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 신께서 하시는 일이며, 그 분의 아량은 참 오지랖도 넓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밀양'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와는 또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박쥐'를 보면서 역시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내가 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도 멀고도 험하며,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아, 그렇다고 '박쥐'가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 것은 아니다. 송강호가 분한 상현이 인간을 사랑하며 보살피는 성직자, 신부이며, 이와는 양극에 서 있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라는 이중성에 주목하다보니, 신의 존재를 배제하고는 영화를 볼 수 없었다. 포스터에서도 '지옥'이 언급되는 것을 당신도 나도 알고 있는 것처럼, 지옥은 누구의 영역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나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 뱀파이어로 분한 다음의 상현과 태주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아, 얼마나 고리타분한가. 뱀파이어를 잡으러 다니는 신부와 그를 피하는 뱀파이어의 관계는 참으로도 진부하고 역사도 길다. 하지만 '박쥐'는 신부가 뱀파이어를 잡으러 다니는 영화가 아니었다. 성직자가 뱀파이어가 되는 영화였다. 이는 분명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한 소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신의 은총이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왜 봉사의 일환으로 실험에 참가했던 상현이 뱀파이어가 되도록 신이 지켜만 보고 있었고, 신의 기억력이 그렇게도 좋다면 좋은 일을 하려던 상현을 그 고통 속에서 왜 구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러한 과정 속에서 뱀파이어가 된 상현은 태주를 만나면서 지옥은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현재에도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현재의 지옥에서 구해주려한다. 이러한 행위는 성직자로서 억눌려 있던 인간의 욕구를 여과없이 분출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는 상현이 박쥐, 뱀파이어가 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다. 상현은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해 인간의 피를 마셔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을 위해 기도해야 주어야 하는 자신의 직업과 삶의 존속, 이 두가지 상황 속에서 고뇌하지만, 인간의 욕구를 물리치지 못하하고, 다만 성직자의 가면을 쓴 뱀파이어가 된다. 그렇지만 신의 영역 안에 있던 상현은 신의 영역 밖에 있는 태주가 뱀파이어로 변하고 나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때부터 상현은 뱀파이어를 잡으러 다니는 성직자의 탈을 쓴 뱀파이어가 되는 것이다.
 
  완전한 냉혈안이 되지 못한 상현과 그 동안 밤에 뜀박질하는 것으로 대신하던 억눌린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는 태주, 둘은 같은 피가 흐르지만, 다른 심장을 지니게 된다. 어쩌면 '박쥐'의 한계는 여기서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온갖 멋진 미장센과 화려한 출연진에 파격적인 노출신들을 다 잠재울 수 있는 고리타분함이 여기 있다. 박쥐, 뱀파이어가 되었음에도 상현은 성직자였고, 자신을 신에게 변호하기에 급급한다. 아, 우리가 알고 있는 고결한 성직자의 너그러움이 아닌, 지옥에 갈까 두려워 벌벌 떠는 뱀파이어도, 성직자도, 평범한 인간도 되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태주는 오히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변화에도 두려워 하지 않으며 오직 그 상황을 충분히 즐긴다. 이러다 우리 지옥가요가 아니라, 태주의 모습에 가슴 졸이다 상현이 먼저 죽을 것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

  그래, 너그럽게 마음을 열고 신부 상현이 뱀파이어가 되면서 느끼는 원초적인 욕구와 목숨부지를 위한 살인, 그러나 성직자로서의 모든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다루고자 했다고 접근해 보자.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 상현은 기왕 지옥에 간다면 온갖 못된 짓 다 해보자가 아니라, 지옥에 간다하더라도 사면받을 수 있도록 나 좀 잘 봐주세요, 라고 신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상현이 태주처럼 막가는 캐릭터였다면 이 영화는 아마 산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산으로 가는 것이 무서워 급히 하산한 것은 아닐까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신발로 상현은 태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던 장면은 애틋했고, 마지막 가는 길에 상현의 신발로 갈아신은 태주의 모습역시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얇은 태주의 발목에 신긴 문수가 맞지 않는 커다란 신발은, 어쩌면 신의 영역에 닿을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좀 씁쓸하다. 그래 원래부터 큰 신발이었어, 네가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도 마음이 씁쓸하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 참 재미나게 봤다. 오랜만에 두고두고 생각 할 수 있는 스토리를 던져준 것 같아 '박쥐'영화에 심심한 감사를 보낸다.

by 블루데이 | 2009/05/09 02:29 | 여유로운 시선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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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영화리뷰전문 무비조이 at 2009/05/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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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화제작 가 개봉했다. 이 작품은 주연 송강호의 성기 노출이 초미의 화제가 될 만큼 현재진행형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또한 는 언론시사회를 마친 후 여러 가지 단평과 의견들이 물밀듯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이런 관심과 여러 가지 평가는 (2003년)때를 생각나게 한다. 당시 이 작품이 나왔을 때 여러 가지 의...more

Commented by mbo at 2009/05/10 03:27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만, 과대평가 되었다는 리뷰만 많이 보다가 이글을 보니 영화가 갑자기 보고싶어지네요.
Commented by 블루데이 at 2009/05/10 16:29
앗,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9/05/11 00: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블루데이 at 2009/05/11 00:1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적 감사합니다. 씨익...;
Commented by deephole at 2009/05/12 00:52
잘봤어요. 참으로 시간이 갈수록 이 영화에 대한 생각만 많아지고, 맘에 들어오는 비평들은 점점 없어졌는데 간만에 즐거운 글 봤습니다. :)
Commented by 블루데이 at 2009/05/12 20:26
아, 즐겁게 읽으셨다니 감사하네요~^^
Commented at 2009/05/12 16:10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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