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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국가인권위원회

[날아라, 펭귄] 날았다, 펭귄!








  펭귄은 날지 못한다. 그런데 수영은 좀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좀 귀엽게 생겼고, 생각하는 것보다 다리도 길다. 그래서 수영을 잘 하는 걸까? 아무튼 원천적으로 날지 못하는 펭귄이 날아보려니까, 팔이 부러질 듯 아픈거다. 그런데 나름 같은 조류에 속하는 녀석들은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늘을 나니까 분하고 억울한거다. 너는 나는데, 왜 나는 못 날아? 그렇게 펭귄이 날기 위해 고분분투하다보니 눈물나게 서럽고, 억울한거다. 작은 몸통, 단정한 외모, 이런 거 말고 한 번 날아보겠다고 그렇게 애를 쓴다. 아, 이렇게 말하다보니 누군가와 닮았다. 그래, 나를 닮았고, 우리 엄마를 닮았고, 아빠를 닮았다. 그리고 당신도 좀 닮았으며, 내 친구를 닮기도 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땀이라도 닦아주고 싶다.

  나는 어릴 적 부터,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들이 무척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적성에 맞지 않다는 유식한 언어를 써가며 잘도 피했다. 그 덕분에 나는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하물며 영어까지도 그저 그렇다. 엄마는 아직도 이런 나를 답답해 한다. 나는 그냥 집에서 책이나 보고, 재미난 만화나 읽으며 살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남들만큼 끈기도 없으면서 비교당하는 것이 싫어 남들만큼 해보려고 죽을 둥 살 둥 산다. 말 그대로 죽을 둥 살 둥이다. 팔이 부러져라 날개짓을 하는 펭귄인거다.

  [날아라, 펭귄]은 모두가 주인공이다.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는 하나밖에 없는 금쪽같은 아들이고 싶지만, 정작 자신의 꿈조차 엄마에게 말하지 못하는 아홉살 승윤이는 벌써부터 팔이 아프다. 승윤이 엄마는 밖에서는 돈 벌랴, 안에서는 승윤이와 남편 뒷바라지 하랴, 온몸이 아린다. 승윤이 아빠는 어린 승윤이도 안쓰럽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아내도 안쓰럽고, 무엇보다 돈만 벌어오는 존재로 전락한 것 같은 자신도 안쓰럽다. 

  1년만 더, 1년만 더를 외치는 아내와 아이들을 외국에 보내놓고 혼자서 살아가는 허과장은 늘 외롭다. 한 잔만 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모두가 슬금슬금 피하기만한다. 심지어 4년만에 한국에 들어 온 아내와 아이들도 남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이제는 가족들의 곁으로 날아갈 수 없을만큼 자신이 멀어진 것 같은 저릿한 마음에 울음이 맺힌다.

  새로 들어 온 남자 사원은 훤칠한 외모에 순박하게 생겼고, 베지테리언이며,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또 다른 신입 여자 사원은 둥글둥글한 성격에 식성도 좋고, 밝으며, 담배를 한다.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이 있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 속에서 이런 사람은 되고, 저런 사람은 안 된다. 주는 것 없이 미우며, 내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아도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곤란한 심경을 신입사원 둘은 고스란히 몸으로 겪어내며, 피부로 체감한다.

  부모와 자식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부인이 생기 있는 삶을 찾겠다며, 복지관에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이 든 여편네가 여행간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다. 집 안에서는 소리만 지를 줄 알았지, 허리 굽혀 화초 돌볼 줄도 몰랐던 남편의 꼬장꼬장한 생활을 나이 먹고 견뎌내는 것이 싫어진 아내는 집 밖으로 날개짓을 시작한다. 

  영화 속 모두는 팔이 저릿해 질 정도로 열심히 팔을 놀리며, 날아 보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그들을 무모하다 비난하지 않고, 어리석다 욕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생활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관객들은 그 상황을 유쾌하게 바라보고, 박수를 치며 극장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내일도 나는 날아보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살 거다. 그러나 틈틈이 영화 속 펭귄을 떠올리며, 위안을 받으며 멍하니 앉아 생각하는 시간도 갖게 될 거다. 그래, 어쩌면 펭귄은 이미 조금 날아 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by 블루데이 | 2009/09/22 02:09 | 여유로운 시선 | 트랙백 | 덧글(1)

[시선 1318] 누구에게나 십대는 있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선생님'이란 쑥스러운 타이틀을 달았다.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 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이랑 잘 놀았고, 간혹 엇나가는 아이들에게는 온갖 협박과 회유로 책상에 오래 앉아 있게 붙들었을 뿐, '선생님'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선생님'이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의 기대치를 채워주기 위해 '선생님'인 척 했다. 그들은 내게 '길'의 종류를 물었고, 나는 길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너희는 한 가지 길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선생님'이 아니라 '학원 원장'의 '고용인'일 뿐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것이 좋았고, 나로 인해 아이들이 교과목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얄팍한 보람도 느끼며, 내가 타인의 세상을 밝게 조명할 수 있는 존재가 되다니 감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지 않아도, 네 삶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상담은 할 수 없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네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을 때, 번번히 작아지는 나는 획일화된 한국 교육의 증거물일뿐, 선생님일 수 없었다. 나는 공부에 취미가 없고, 운동은 관심도 없고, 집이 부유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할 수 있냐는 질문 앞에, 윽박지르고 문제집을 펴 주는 역할만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내게 [시선 1318]은 내게 많은 화두를 던진다. 꾸미지 않아도 예쁜, 앞으로 살아갈 날이 곱절은 더 많은 아이들의 인생을 누가 감히 어둡다, 밝다 말할 수 있을까. [시선 1318]에는 십대들의 예쁘고도 진지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다섯개의 시선이 십대들의 오늘과 내일을 비춰낸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로 이분법화 되는 모두의 시선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박진주, 개구지고 산만하며 공부도 못하는 마진주, 두 진주를 동화적 화면과 뮤지컬 형식과 재미난 캐릭터로 잘 담아냈다. 그러나 익숙한 스토리에 전형적인 결론이 영상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아쉬웠던 [진주는 공부 중]이 [시선 1318]의 시작을 알린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잘하는 것을 해야만 하는 아이들은 스무살이 되기에도 다섯살쯤은 부족하다. 어른들은 그들의 삶을 대단하다 말하고, 잘 될 것이라 격려한다. 그리고 덧 붙이는 말은 언제나, 한결같이, 너를 위해서야. 혹시 나는 아무런 장점도 없이 태어난 것은 아닐까. 나의 존재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웠던 십대의 중반의 선택은 나의 의지보다는 어른들의 개입으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나의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는 선택 앞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울면서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에 언제나 외로웠던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한 [유 앤 미].

  문성근, 정유미, 박보영 등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반가웠던 [릴레이]는 유머 속에서 무거운 사회적 시선을 담아낸다. 미혼모는 있고 미혼부는 없는 세상의 시선 속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선택이 모두 틀렸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다. 간간히 인터뷰의 삽입과 아이들의 항의와 선생님들의 제지로 이어지는 논쟁 속에서 우리는 상투적이기에 무서운 사회의 시선과 잣대를 마주하게 된다. 사람보다는 사회가 만들어 낸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 급급하여, 일반화 된 논리 속에 생각을 가두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다루기 어려웠던 주제를 단편 영화 속에 밀어넣기에 급급한 듯 느껴지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친절함이 너무 과도했던 것은 아닐까.

  대통령 선거 하루 전 날, 일년 전 한 여학생이 죽은 장소를 둘러싼 관련 없는 아이들의 루머는 몸통에 날개를 달고 우주까지도 날아갈 기세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에는 악의와 은폐가 없으며, 맥락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대화는 어쩐지 씁쓸하고 눈물겹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이 아름답고 더럽다의 기준도 명확하게 서지 않은 상태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렇지만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의 대화는 자고 일어나 듣고 본 것들에 대한, 의도치 않아도 알게되는 것들에 대한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의견이 담겨 있다. 끊임없이 비트박스를 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속에서 우중충한 하늘과 추수가 끝난 논이 부조화스러워 엇박자처럼 슬슬 웃음이 새는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국가는 언제나 출산률이 낮다고 걱정하며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이미 길러지고 있는 아이의 행복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을 아이의 앞날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치졸한 변명일 뿐이라고 일축시킬 수도 있겠지만, [달리는 차은]에서는 좀 더 깊은 관심을 요구한다. 남들과 다른 엄마와 사는 차은이는 달리기를 학교에서 제일 잘 하지만, 계속해서 달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자신들과는 다른 국적의 엄마를 가졌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다. 다른 것은 더 이상 틀린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등 돌리는 차가운 시선에 차은이는 말한다. '그러는 거 아냐'

  십대의 나는 매순간이 서럽고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행복해지기 위해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타인의 시선에 있어 여유로워 지지는 않았지만 계산하지 않은 감정 덕분에 더 슬프고, 더 즐거운 십대를 보냈다. 싫은 건 싫었고, 좋은 건 좋았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쉽게 분노하고, 진심이 통하면 모든 것을 용서했다. 아름다운 꽃가지는 꺽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아름다운 아이의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꺽어버리는 것은 비일비재한 것은 아닐까.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이 영화 속, 그리고 밖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by 블루데이 | 2009/06/10 13:45 | 여유로운 시선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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