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 로그인  


태그 :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코렐라인]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가온 코렐라인












  그리 멀지 않은 나의 유년시절을 기억해 본다. 나는 이기적인 여자 아이였고, 혼자 놀기를 좋아했으며, 피아노 의자 밑에 웅크리고 앉아 날 전혀 닮지 않은 인형을 끌어안고, 어둡고 축축한 현재가 아닌 다른 세계을 꿈꿨다. 그 때의 나는, 나의 모습이 진실이 아닐 것이라 믿었으며, 이 순간을 잘 견딘다면 엄청나게 화려한 집에서 다정한 엄마와 친절한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올 줄 알았다. 그랬었다. 지금 이 사실을 나의 진짜 엄마가 안다면 법적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엄마한테 딱 죽지 않을 만큼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죽을만큼 맞아도, 화가 날만큼 미워도, 다음 날 얼굴보면 풀어지는 게 엄마다. 물론, 언젠가 엄마가 날 13대나 때렸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옹졸하고 쪼잔한 인간이겠지만, 엄마는 불완전한 삶을 내게 주고도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운 사람인 것이다. 나는 [코렐라인]을 보면서,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려 본다.
  '코렐라인'은 새롭게 이사한 집에서 예쁜 정원을 꾸미고,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너무나도 바빠서 제대로 된 밥을 챙겨 줄 시간도 없다. 이웃들은 '코렐라인'을 자꾸만 '캐롤라인'이라 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뱉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어쩌면 유일한 또래 와이비 역시 '코렐라인'이 꿈꾸는 친구의 모습과는 다르다.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코렐라인'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를 찾게 된다. 다른 세상은 모든 것이 '코렐라인'의 마음에 든다. 단추 눈을 한 엄마, 아빠는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는 모습에 곧 매료된다.
  '코렐라인'의 이중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현실에 대한 불만은 커져간다. 또한 그만큼 다른 세상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러한 스토리는 어쩌면 우리가 이미 익숙한 동화들의 설정일지도 모르겠다. 무심한 엄마와 아빠, 자신이 없이도 잘 돌아갈 것 같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새로운 세계의 발견은 익숙한 스토리다. 하지만 그 장소를 드나들 수 있는 법칙과 금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장치들을 발견하는 것이 이런 스토리 라인 속에서도 관객이 즐겁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코렐라인]은 그런 요소 하나하나에 세삼한 배려를 보여주며, 이 배려 속에 사람의 손길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가도 자각하면서 다시 한 번 감동한다. 
   [코렐라인]은 닐 게이먼의 판타지 소설 'Coraline'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야 그의 존재를 각인하게 된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도 반신반의했던 그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영국에서 발표된 코렐라인, 책의 표지는 좀 음침한 기운이 감돈다. 책을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목록을 살펴보니 영화와는 이야기 배열구조가 조금 다른 듯하다. 원작을 보지 못해, 무엇이 더 나은지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는 스토리를 배제하더라도 시각적인 즐거움, 황홀감을 안겨준다. 모두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믿을 수가 없다. 스톱모션임에도 전혀 인위적이거나 어색함이 없는 매끄러움, 살아있는 표정과 꼼꼼하고도 아기자기한 소품들, 어느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눈의 황홀감만으로도 이 영화는 높은 평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닐게이먼의 탄탄한 스토리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니, 영화적 즐거움에 완벽하다 할 수 있겠다. 사랑과 우정과 감동이 있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져, 언제나 열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면, [코렐라인]은 마음껏 좋아하여도 부끄럽지 않을 탄탄하고 매끄러운 스토리와 화려한 영상이 최대의 장점이다. 아, 어느 하나 순위를 뒤로 꼽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영화다.

by 블루데이 | 2009/05/23 02:09 | 여유로운 시선 | 트랙백 | 덧글(3)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