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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청소년드라마의이해와실제

[시선 1318] 누구에게나 십대는 있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선생님'이란 쑥스러운 타이틀을 달았다.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 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이랑 잘 놀았고, 간혹 엇나가는 아이들에게는 온갖 협박과 회유로 책상에 오래 앉아 있게 붙들었을 뿐, '선생님'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선생님'이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의 기대치를 채워주기 위해 '선생님'인 척 했다. 그들은 내게 '길'의 종류를 물었고, 나는 길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너희는 한 가지 길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선생님'이 아니라 '학원 원장'의 '고용인'일 뿐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것이 좋았고, 나로 인해 아이들이 교과목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얄팍한 보람도 느끼며, 내가 타인의 세상을 밝게 조명할 수 있는 존재가 되다니 감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지 않아도, 네 삶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상담은 할 수 없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네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을 때, 번번히 작아지는 나는 획일화된 한국 교육의 증거물일뿐, 선생님일 수 없었다. 나는 공부에 취미가 없고, 운동은 관심도 없고, 집이 부유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할 수 있냐는 질문 앞에, 윽박지르고 문제집을 펴 주는 역할만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내게 [시선 1318]은 내게 많은 화두를 던진다. 꾸미지 않아도 예쁜, 앞으로 살아갈 날이 곱절은 더 많은 아이들의 인생을 누가 감히 어둡다, 밝다 말할 수 있을까. [시선 1318]에는 십대들의 예쁘고도 진지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다섯개의 시선이 십대들의 오늘과 내일을 비춰낸다.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로 이분법화 되는 모두의 시선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박진주, 개구지고 산만하며 공부도 못하는 마진주, 두 진주를 동화적 화면과 뮤지컬 형식과 재미난 캐릭터로 잘 담아냈다. 그러나 익숙한 스토리에 전형적인 결론이 영상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아쉬웠던 [진주는 공부 중]이 [시선 1318]의 시작을 알린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잘하는 것을 해야만 하는 아이들은 스무살이 되기에도 다섯살쯤은 부족하다. 어른들은 그들의 삶을 대단하다 말하고, 잘 될 것이라 격려한다. 그리고 덧 붙이는 말은 언제나, 한결같이, 너를 위해서야. 혹시 나는 아무런 장점도 없이 태어난 것은 아닐까. 나의 존재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웠던 십대의 중반의 선택은 나의 의지보다는 어른들의 개입으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나의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는 선택 앞에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울면서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에 언제나 외로웠던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한 [유 앤 미].

  문성근, 정유미, 박보영 등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반가웠던 [릴레이]는 유머 속에서 무거운 사회적 시선을 담아낸다. 미혼모는 있고 미혼부는 없는 세상의 시선 속에서,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선택이 모두 틀렸다고 말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다. 간간히 인터뷰의 삽입과 아이들의 항의와 선생님들의 제지로 이어지는 논쟁 속에서 우리는 상투적이기에 무서운 사회의 시선과 잣대를 마주하게 된다. 사람보다는 사회가 만들어 낸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 급급하여, 일반화 된 논리 속에 생각을 가두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다루기 어려웠던 주제를 단편 영화 속에 밀어넣기에 급급한 듯 느껴지는, 모든 것을 말해주는 친절함이 너무 과도했던 것은 아닐까.

  대통령 선거 하루 전 날, 일년 전 한 여학생이 죽은 장소를 둘러싼 관련 없는 아이들의 루머는 몸통에 날개를 달고 우주까지도 날아갈 기세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에는 악의와 은폐가 없으며, 맥락도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대화는 어쩐지 씁쓸하고 눈물겹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이 아름답고 더럽다의 기준도 명확하게 서지 않은 상태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그렇지만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는 것과 같이, 그들의 대화는 자고 일어나 듣고 본 것들에 대한, 의도치 않아도 알게되는 것들에 대한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의견이 담겨 있다. 끊임없이 비트박스를 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속에서 우중충한 하늘과 추수가 끝난 논이 부조화스러워 엇박자처럼 슬슬 웃음이 새는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국가는 언제나 출산률이 낮다고 걱정하며 젊은이들을 비난한다. 이미 길러지고 있는 아이의 행복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을 아이의 앞날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치졸한 변명일 뿐이라고 일축시킬 수도 있겠지만, [달리는 차은]에서는 좀 더 깊은 관심을 요구한다. 남들과 다른 엄마와 사는 차은이는 달리기를 학교에서 제일 잘 하지만, 계속해서 달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자신들과는 다른 국적의 엄마를 가졌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다. 다른 것은 더 이상 틀린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등 돌리는 차가운 시선에 차은이는 말한다. '그러는 거 아냐'

  십대의 나는 매순간이 서럽고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행복해지기 위해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타인의 시선에 있어 여유로워 지지는 않았지만 계산하지 않은 감정 덕분에 더 슬프고, 더 즐거운 십대를 보냈다. 싫은 건 싫었고, 좋은 건 좋았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쉽게 분노하고, 진심이 통하면 모든 것을 용서했다. 아름다운 꽃가지는 꺽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아름다운 아이의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꺽어버리는 것은 비일비재한 것은 아닐까.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이 영화 속, 그리고 밖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by 블루데이 | 2009/06/10 13:45 | 여유로운 시선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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